조선시대 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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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정몽주 피살(1337). 이성계 즉위. 문무백관의 제도 제정.

1393년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결정. 식년문과(式年文科) 실시(33인 급제).

1394년

 정도전(鄭道傳),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편찬. 한양(漢陽)으로 천도.

1395년

 정도전 등이 《고려사》 37권을 간행. 예문춘추관 설치.
 중앙군 10위(衛)를 10사(司)로 고 쳐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에 소속.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戊寅靖社). 태조가 왕세자 방과(芳果)에게 선위 정종 즉위.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芳幹의 난). 방원(芳遠)을 왕세자로 책봉. 정종이 방원에게 선위. 태종(太宗) 즉위.

1401년

증광문과(增廣文科) 실시. 신문고(申聞鼓) 설치.

1402년

무과의 과거 실시. 호패법(號牌法) 실시.

1403년

계미자(癸未字) 주조(鑄造). 명나라에서 고명(告命)·인장(印章)·조칙(詔勅)을 보내옴.

1411년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를 승문원(承文院)으로 고침. 오부학당(五部學堂)을 운영. 동북면지 방으로 양전(量田)을 실시.

1413년

도(都)·군(郡)·현(縣)의 칭호 개정.

1414년

노비소산한품속신법(奴婢所産限品贖身法)을 제정. 무과(武科)에 삼장통고법(三場通考法) 적 용.

1415년

시장세와 상인세를 저화(楮貨)로 징수. 장인세(匠人稅)를 신설.

1417년

각 도(道)에 잠소(蠶所) 설치. 의흥현(義興縣)에서 《향약구급방》 중간.

1419년

이종무(李從茂), 왜구의 근거지인 대마도 정벌. 제주에 양전(量田) 시행.

1420년

집현전(集賢殿) 설치. 경연청(經筵廳) 설치.

1423년

한성의 남산에 봉수대 축조. 불교를 선교(禪敎) 양종으로 정리. 조선통보(朝鮮通寶) 주조.

1429년

정초(鄭招), 《농사직설(農事直說)》 저술. 경상도·충청도에서 양전사업(量田事業) 진행.

1432년

《세종실록지 리지》를 편찬.

1433년

압록강변의 여진족을 토벌. 화포전(火砲箭)을 발명.

1434년

갑인자(甲寅字) 주조, 갑인자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간행. 북동·북서에 6진(鎭)을 설치. 장영실 등이 경복궁에 자격루(自擊漏)를 설치.

1435년

화약무기인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발명. 함길도에 목화를 심게 함.

1436년

납활자 병진자(丙辰字)를 주조.

1437년

물시계인 행루(行漏)·앙부일구 등을 제조, 간의대(簡儀臺)를 설치.

1438년

왜선의 삼포평균분박(三浦平均分泊) 엄수를 지시. 장영실, 자동물시계 옥루(玉漏)를 제작.

1441년

장영실 등이 세계 최고(最古)의 측우기(測雨器)를 설치하고, 양수표(量水標)를 세움.

1443년

통신사와 대마도주가 계해조약(癸亥條約) 체결. 세견선(歲遣船)을 5척으로 약정. 훈민정음 (訓民正音) 창제.

1444년

양전산계법(量田算計法) 제정. 무과삼관법(武科三官法) 실시.

1446년

수양대군이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편찬. 훈민정음 반포(頒布).

1447년

《용비어천가》의 주해 완성.

1450년

동활자 경자자(庚子字) 주조. 정음청(正音廳)을 설치.

1451년

국방강화를 위해 군사(軍士)를 늘림. 문종이 창안한 화차(火車)를 제작하여 배치. 김종서 (金宗瑞) 등이 《고려사》 136권을 개찬.

1452년

김종서 등이 《고려사절요》 편찬. 《동국정운(東國正韻)》을 과거과목 신설.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 수양대군이 김종서·황보인 등을 죽이고 정권장악. 안평대군(安平大君) 사사(賜死)됨. 이징옥(李澄玉)의 난.

1456년

사육신(死六臣)사건.

1457년

단종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 영월로 유배. 노산군(단종) 죽음.

1460년

하삼도민(下三道民) 4,500호를 평안·강원·황해도에 이주시킴.

1461년

간경도감(刊經都監) 설치.

1463년

홍문관(弘文館) 설치.

1464년

전폐(箭幣)를 주조.

1466년

과전법(科田法)을 폐지하고 직전법(職田法)을 실시.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 규형(窺衡)과 인지의(印地儀)를 이용한 삼각측량법을 발명.

1468년

남이(南怡)·강순(康純) 등이 반역으로 사형됨.

1474년

개찬한 《경국대전》과 《속록》을 반포.

1481년

서거정(徐居正) 등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50권을 찬진(撰進).

1484년

성균관에 학전(學田) 400결(結)을 줌. 서거정 등이 《동국통감(東國通鑑)》을 찬진.

1489년

유교(儒敎)의 전적(典籍)을 각 향교(鄕校)에 배포.

1490년

울산·거제·동래·남해 등지에 축성. 순천에 전라좌수영을 설치.

1491년

북정(北征)을 결의. 두만강 방면의 여진족 정벌.

1493년

성현(成俔) 등이 《악학궤범(樂學軌範)》 9권을 완성.

1496년

무오사화(戊午史禍). 유자광(柳子光) 등의 무고로 김일손(金馹孫)·권오복(權五福) 등이 처 형되고, 김종직(金宗直)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함.

1498년

상평창(常平倉) 설치.

1502년

하삼도(下三道)의 주민 1,600호를 평안·함경·황해도에 이주시킴.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

1507년

이과(李顆) 등이 반란을 꾀하다 발각되어 옥사.

1510년

삼포왜란(三浦倭亂), 황형(黃衡)·유담년(柳聃年) 등이 이를 평정.

1512년

일본과 임신조약(壬申條約) 체결하여 세견선(歲遣船) 및 세사미(歲賜米)를 반감함.

1515년

을해동활자(乙亥銅活字) 주조.

1517년

김안국(金安國)이 《여씨향약(呂氏鄕約)》을 간행하여 반포.

1518년

소격서(昭格署)를 혁파하고, 소장한 그림을 도화서(圖畵署)에 이장(移藏).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1520년

제주의 한지(閑地)에 군량을 마련하기 위해 둔전(屯田)을 설치.

1527년

동궁에 작서(灼鼠)의 변이 일어남. 4월, 최세진(崔世珍)이 《훈몽자회(訓蒙字會)》를 지음.

1530년

이행(李荇) 등이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

1532년

조정관리의 녹봉을 감하여 구황(救荒)에 충당.

1543년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 건립.

1544년

사량진왜란(蛇梁鎭倭亂).

1545년

조광조 복관(復官)되고, 현량과 다시 실시. 왕대비 문정왕후(文定王后) 윤씨가 섭정. 8월, 을사사화(乙巳士禍).

1547년

정미사화(丁未士禍). 대마도주(對馬島主)와 정미약조 체결(수호조약을 개정).

1549년

이홍윤(李洪胤)의 옥 일어남.

1550년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의 편액을 하사함(사액서원의 시초). 12월, 선교양종(禪敎兩宗)을 다시 둠.

1551년

양종선과(兩宗禪科)를 설치하고 시경승(試經僧)에게 도첩(度牒)을 발급.

1555년

을묘왜변(乙卯倭變).

1559년

황해도에서 임꺽정(林巨正)의 난 일어남(∼1562).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 사이에 사 단칠정론(四端七情論)에 관한 서신왕래 시작(∼1566)

1560년

이황, 예안(禮安)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움(75년에 사액).

1561년

이정(李楨)이 경주에 서악서원(西岳書院)을 세우고 설총(薛聰)·김유신·최치원을 향 사(享社). 이지함이 《토정비결》을 지음.

1574년

안동에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세우고 이황을 향사(75년에 사액).

1575년

대마도주(對馬島主)가 왜국이 조선침략을 위해 전선을 건조하고 있음을 통지.
7월, 심의겸 (沈義謙)˙김효원(金孝元)의 동서당론이 일어남.

1577년

《격몽요결(擊蒙要訣)》 간행.

1583년

이이, 십만양병설(十萬養兵說)을 건의함.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일어남.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 시작. 일본침략군 21만이 부산포에 상륙. 옥포해전에서 왜선 26척을 대파. 명(明)나라의 1차원군 압록강을 건너옴.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 명나라의 2차원군 4만이 압록강을 건너옴.

1593년

왜군이 경상도 지역으로 철수. 선조가 한성으로 귀환.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약 20만의 왜군 상륙.
원균(元均) 휘하의 수군이 칠천(漆川)·고성(固城)에서 대패.

1598년

이순신(李舜臣)이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전사. 왜란 종결.

1601년

한성에 동묘(東廟) 건립.

1603년

이광정(李光庭)과 권희(權憘)가 연경에서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를 가져옴.

1604년

유정(惟政)을 쓰시마섬과 일본에 보내어 그곳 사정을 알아보게 함.

1605년

유정이 포로 3,000여 명을 데리고 일본에서 귀국.

1610년

허준(許浚)이 《동의보감》 25권 찬진.

1619년

명나라에 1만 명의 원군 파견.

1623년

김류 등이 광해군을 폐하고 능양군(綾陽君) 추대, 정권을 잡음(인조반정).

1624년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킴.

1626년

호패법시행. 남한산성을 쌓고 수어청을 둠.

1627년

후금이 조선에 침입(정묘호란). 인조가 강화로 피신.

1628년

명나라의 숭정연호(崇禎年號)를 사용.

1630년

무감(武監) 설치.

1633년

척화(斥和)의 교를 내리고, 후금의 침략에 대비케 함. 임경업(林慶業)을 청북방어사(淸北防禦使)에 임명. 상평청에서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주전.

1636년

후금의 국서를 거절. 금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 옴. 청군 침입(병자호란).

1637년

강화도 함락됨. 인조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항복. 인조 환궁. 왕세자 일행 불모가 되어 선양[瀋陽]에 도착. 명나라 연호를 폐지하고 청나라 연호를 씀.

1640년

세자 선양에서 돌아옴.

1645년

소현세자, 독일인 신부 아담 샬(湯苦望)로부터 천문·산학(算學)·천주교에 관한 서적 등 을 받아 가지고 한성으로 돌아옴. 왕세자(소현세자) 죽음. 봉림대군(鳳林大君) 한성으로 돌아와 세 자로 책봉됨.

1652년

연경에 천문학관을 보내어 시헌력법(時憲曆法)을 배워오게 함. 어영청(御營廳)을 설치.

1653년

제주목사,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의 화순포(和順浦) 표착을 보고.

1655년

추쇄도감을 두고 전국의 노비를 추쇄, 강화(江華)방비에 임하게 함. 일본통신사 조형(趙珩) 일행 부산에서 대마도로 떠남.

1658년

청나라가 러시아정벌에 원군을 요청해 옴.(나선정벌)

1660년

남인·서인 간에 예론시비(禮論是非) 시작됨. 전라도 산간군(山間郡)에 대동법 실시.

1662년

현종 창덕궁으로 옮김. 고려조의 능침(陵寢)을 봉식(封植).

1671년

현종 경덕궁으로 옮김. 전국적으로 대기근. 경기˙충청도에서 민란 일어남.

1679년

강화에 돈대(燉臺) 축조함.

1682년

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 설치.

1687년

금위영(禁衛營) 폐지. 숙종 탕평책(蕩平策)을 유시함.

688년

창덕궁 금호문 밖에 관천대(觀天臺) 축조.

1689년

세자책봉문제로 노론(老論)이 실각하고 남인이 집권(기사환국). 왕비 인현왕후 민씨 폐출 됨.

1690년

장희빈을 왕비로 책봉함.

1694년

노론에 의해 남인 몰락(갑술옥사). 4월, 폐비 민씨를 복위하고 왕후 장씨를 다시 희빈으로 강등. 수도 방위를 위해 문수산에 성을 쌓음.

1697년

장길산(張吉山)이 이끈 농민군 봉기. 도성안의 거지들을 각 섬으로 보냄. 막부(幕府)를 통 하여 왜인의 울릉도 출입금지를 보장받음.

1702년

백두산 화산 폭발. 이준명(李浚明) 울릉도를 답사, 지도 작성.

1711년

평양성과 안주성을 개축케 함. 북한산성 축성 시작. 조태억(趙泰億) 등을 일본에 통신사로 보냄.

1712년

청나라 오라총관 목극등(穆克登)이 백두산정계비를 세움. 북한산성 역사를 끝냄.

1713년

중인·서얼 출신에게 죽은 뒤 벼슬을 주는 규정 제정.

1714년

8도에 지진 발생.

1723년

서양의 수총기(소화기)를 만들게 함. 10월, 관상감에서 서양의 문진종(서양식 시계)을 만들 게 함.

1728년

이인좌(李麟佐) 등 밀풍군(密豊君) 추대, 반란을 일으킴.

1729년

사형수에 대하여 삼복(三覆)을 시행함.

1732년

관상감 관원 청나라에서 《만년력(萬年曆)》을 가져옴.

1740년

각 지방의 도량형기를 통일시키도록 함.

1745년

예각(藝閣)에서 《경국대전》 《속대전》을 1책으로 간행.

1750년

균역청 설치.

1756년

금주령 선포, 밀주를 엄히 단속함. 11월, 흉년으로 기아민 다수가 도성에 들어옴.

1758년

해서·관동 지방에 천주교가 크게 보급 됨.

1761년

노비에 대한 상전의 사형(私刑) 금지.

1763년

김수장(金壽長)이 《해동가요》 편찬. 장안의 승려들을 추방함. 통신사 조엄이 대마도에서 고구마 종자를 가지고 들어옴

1765년

장례원(掌隷院)을 혁파.

64년

홍계희(洪啓禧) 등 《해동악장》을 편찬. 10월, 장례원에서 맡았던 노비관계 사무를 형조 에 이관.

1768년

각도의 성곽시설과 장비를 수리토록 함.

1769년

청천강을 따라 남당성(토성)을 쌓음.

1770년

전국의 제언(堤堰)을 수축. 《동국문헌비고》 100권 40책을 완성.

1772년

갑인자(甲寅字)를 개수하여 활자 15만 자를 주조(임진자).

1773년

한성 청계천의 뚝을 돌로 쌓기 시작함. 11월, 총융청에서 조회포·일화봉 등 새로운 포탄 을 만들어 사격 실험.

1774년

종1품에서 당상 정3품을 대상으로 등준시(登俊試)를 실시(15인 급제).

1777년

고쳐 주조한 갑인자 15만자를 주조(점유자).

1779년

처음으로 내각검서관(內閣檢書官)을 설치.

1780년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수정에 착수(1796년에 완성). 창덕궁에 측우기를 설치하고, 서운 관(書雲觀)에 명하여 《천세력(千歲曆)》을 만들게 함.

1783년

승려의 장안 입성을 금함. 이승훈(李承薰)이 동지겸사은사 일행을 따라 연경으로 떠남.

1784년

이승훈이 연경 남천주당에서 그라몽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음. 이승훈, 천주교 관련 서적을 가지고 귀국. 이벽(李檗)·권철신(權日身) 등이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음.

1785년

한성에 천주교교회가 생김(진고개 김범우의 집). 해시계 간평일귀(簡平日晷)·혼개일구(渾蓋日`) 등을

1786년

연경에서 서양서적의 구입을 금함. 검서시예(檢書試藝)의 규정을 정함.

1787년

프랑스함대 페루즈 일행 제주도를 측량하고 울릉도에 접근함. 동 5월 책문후시(柵門後市) 를 금지함.

1788년

서학관계 서적을 대량 불태움.

1791년

박필관(朴弼寬)의 격고(擊鼓) 사건 일어남. 신해교난(辛亥敎難) 일어남.

1792년

북경 주교 구베아가 교황 비오 6세에게 조선교회 창립을 보고.
정약용(丁若鏞) 기중기(機重器)를 발명.

1794년

수원성[華城]을 쌓기 시작함. 울릉도 지도를 제작케 하고 토산물을 조사함. 12월,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 밀입국 상경.

1795년

천주교도 김시삼(金始三)이 청나라 신부 주문모의 밀입국 포교사실을 밀고. 혜경궁 홍씨 (惠慶宮洪氏) 《한중록》을 지음

1797년

영국제독 브로우튼의 북태평양 탐험선 프로비던스호 동래 용당포(龍塘浦)에 표착.1800년 원자를 세자로 책봉(순조). 정조 죽고, 세자 즉위(순조). 대왕대비(영조계비 정순왕후), 수렴청정을 함.

1801년

정순왕후(貞純王后) 대왕대비 김씨(金氏)의 명에 따라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 실시. 서얼 소통 시행, 내사노비(內寺奴婢) 폐지 등 제도 개혁. 중국인 신부 주문모(周文謨) 등 30여 명의 교 도가 처형되는 ‘신유교난(辛酉敎難)’ 일어남.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사건 일어남.

1802년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화를 입은 이들에게 증직(贈職).

1804년

순조의 친정시작, 김대왕대비 수렴정치 폐함. 평양에 대화재, 공해 여사 600여 호 소실.

1805년

정조실록(正祖實錄) 인간됨. 안동김씨(安東金氏)의 세도정치 시작.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한중록(恨中錄)》 완간

1806년

전라도 영광(靈光) 등 40여 군현에 흉년. 기아자 약 50여만명 발생. 정부 2만 5000석의 구 휼미를 배급.

1807년

황해안 대해일(大海溢)로 패해도 극심. 유구인 99명 제주도에 표착. 대마도(對馬島)에 통신 사(通信使) 파견 요청 거절하자, 왜관(倭館)의 왜인들 난동을 벌임.

1808년

북청(北靑)·단천(端川)에서 민란 발생. 《만기요람(萬機要覽)》 완성.

1809년

함흥에 대화재. 필리핀 루손섬의 원주민 3명, 제주도 표착 9년 만에 송환.

1811년

곡산 등 민란 일어남. 홍경래(洪景來)의 난(평안도 농민전쟁) 일어남. 역법(曆法)을 개정, 시행.

1812년

홍경래 전사, 난이 평정됨. 왕자 호(昊), 왕세자에 책봉됨(훗날의 익종).

1813년

공충도(公忠道)를 다시 충청도로 개칭. 제주도 토호 양제해(梁濟海) 등의 민란 일어남.

1815년

경상도 함안(咸安) 등지에 대홍수. 을해교난(乙亥敎難). 정약전(丁若銓)의 《자산어보(玆山魚譜)》, 남공철(南公轍)의 《금릉집(金陵集)》 24권 121책 완간.

1816년

영국 군함 알세스토호·리라호가 충청도 마량진(馬梁津)에 옴. 이로 인해 서양 해도(海圖) 상에서 한반도 서해안의 지형 분명해짐. 한성과 경상도 일대에 홍수.

1817년

삼남지방에 대홍수. 김정희(金正喜), 신라 진흥왕의 북한산순수비 발견, 68자의 비문 판독. 해인사에 대화재

1818년 .

경상도 유생(儒生)들, 상소(上疏)로 채제공(蔡濟恭)의 신원을 요구. 정약용, 유배지 강진(康津)에서 《목민심서(牧民心書)》 완성

1819년

충청도 공주·전라도 전주 등지에 대홍수. 전국적 호구·인구조사 실시. 호수:153만 3515 호, 인구:651만 2349명.

1821년

평양 지방에 괴질 유행, 10여만 명 사망. 국가재정 궁핍상태에 빠짐.

1822년

호적법을 강화함. 인삼밀수출 엄금, 위반자 사형에 처함.

1823년

충청도·경상도 일부에 홍수. 경기·충청·황해도 등 5도 유생들이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서얼(庶孼)의 임용을 요청.

1824년

정하상(丁夏祥)이 베이징에 가 교황에게 사제 파송을 요청. 감자씨 전해짐. 유희(柳僖), 《언문지(諺文誌)》(1권 1책) 등을 완성.

1825년

무신의 승교(乘轎)를 금함. 정하상·유진길(劉進吉) 등, 교황청에 서한 발송, 조선천주교의 수난사실을 보고.

1826년

6월에 지진 발생.

1831년

경희궁 중건 완료. 로마 교황청이 천주교 조선교구 창설.

1832년

개성(開城)출신 무과 급제자의 임용 허용. 영국 상선 로도 아마스트호, 몽금포(夢金浦) 앞 바다에 나타나 외교사상 처음 통상을 요구. 순조, 경희궁으로 천궁.

1834년

폐습·사치를 금함. 창덕궁의 숭문당·양화당 등 많은 전각들 준공. 순조 죽고 왕세손 즉 위(현종), 대왕대비(순조의 비, 純元王后金氏)가 수렴청정.

1835년

전국에 전염병(大疫)유행. 《순조실록》 편찬 위해 실록청(實錄廳) 설치. 청주성 화약고에 낙뢰. 세곡방납(稅穀防納)의 폐를 바로잡음. 왕, 창덕궁으로 환어(還御).

1836년

프랑스인 신부 모방, 의주(義州)를 거쳐 밀입국. 소의 밀도살, 금광(金鑛)의 잠채(潛採)를 금함.

1839년

유진길·정하상(丁夏祥) 등 교도 다수 처형됨(己亥敎難). 평안·황해·경상도에 홍수. 조인 영(趙寅永)이 제진한 ‘척사윤음(斥邪綸音)’을 헌종이 반포함. 오가작통법 실시.

1840년

앙반들의 상민(常民)착취 엄금. 영국선 2척, 제주도에서 소 등 가축을 약탈해 감. 대왕대비 (純元王后 金氏)수렴청정 중단, 헌종의 친정 시작. 풍양 조씨(豊陽趙氏)의 세도정치 시작됨.

1842년

순천부(順川府) 송광사(松廣寺)에 화재. 《천세력(千歲曆)》 발간.

1843년 .

송광사 중건. 공주(公州)의 대동미(大同米) 착복한 이양옥(李陽玉) 처형

1844년

이원덕(李遠德) 등, 원경(元慶)을 받들고 모반을 획책하다 처형됨. 김정호(金正浩)의 《오 대주도(五大洲圖)》 완성. 김정희(金正喜)가 《세한도(歲寒圖)》 그림.

1846년

프랑스 세실 해군소장, 천주교탄압을 구실로 군함 3척 끌고 충청도 외연도(外煙島) 정박, 왕에게 항의 서한 전달. 김대건 신부, 새남터에서 순교.

1847년

프랑스 군함 글로아르호(號), 지난해 세실 소장이 전한 국서에 대한 해답을 받고자 서해안 으로 들어오다가 고군산열도(古群山列島)에서 좌초. 정부는 청나라를 통해 그 답신을 전달(서양과 의 첫 외교문서).

1848년

정부, 아편흡연을 엄금.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재개.

1849년

헌종이 죽자 은언군(恩彦君) 인의 증손 원범(元範) 즉위(철종). 정학유(丁學游) 또는 고상 안(高尙顔)의 《농가월령가(農歌月令歌)》 및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편찬.

1850년

개성에서 사적인 인삼재배 성행.

1851년

국가경상비 부족으로 비상대비용인 봉부동전(封不動錢)을 변통 사용. 김문근(金汶根)의 딸 이 철종비가 됨(純明王后 金氏). 김씨 세도정치 재개됨. 12월, 대왕대비(순조비 純元王后 金氏)청 정중단, 철종의 친정 시작됨.

1852년

김흥근(金興根), 영의정이 됨. 오위장(五衛將)의 임명을 엄정, 진장(鎭將)도 매관매직 엄금.

1854년

러시아 선박 함경도 덕원(德源)·영흥(永興)해안에 침입, 어민들을 살상.

1855년

영남의 유생들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추존(追尊)을 상소. 영국 함 흐네트호(號) 독도(獨島)를 측량, 프랑스함 비르지니호(號) 동해안 일대를 측량.

1856년

가축의 무단도살 엄금.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중건을 위한 공명첩(空命帖) 300장, 승첩(僧帖:度牒) 100장을 발행. 《동문휘고(同文彙考)》 완간. 《통문관지(通文館志)》 속편 완성.

1857년

최한기(崔漢綺), 세계지리서 《지구전요(地球典要)》 저술 완료.

1859년

《대명률(大明律)》 《대전통편(大典通編)》 등 간행. 원자(元子) 죽음. 서울 근교 사찰들 을 훼파. 억불책의 일환.

1860년

경희궁으로 천궁(遷宮). 최제우(崔濟愚), 경주에서 동학(東學)을 창시.

1861년

창덕궁으로 환어.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완성 간행. 러시아 함대, 함경도 원산항(元山港)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

1862년

충청·전라·경상도 곳곳에서 잇단 민란 일어남. 1850년 이후에 세운 서원을 모조리 철폐.

1863년

금위영(禁衛營)군졸들, 받은 녹미(祿米)의 질 문제로 소요. 동학 교조 최제우 체포되고, 남 해에 민란. 흥선군을 대원군(大院君)으로 봉하고, 대왕대비 조씨가 수렴청정을 시행.

1864년

북인(北人)·남인(南人)을 등용하고, 비변사(備邊司)와 의정부(議政府)의 업무분장. 최제우, 대구에서 사형. 김정호, 대동지지《(大同地志)》완성.

1865년

통제중군(統制中軍) 설치. 찬집소(纂輯所) 설치 《대전회통(大典會通)》 편찬, 《양전편고 (兩銓便攷)》 등과 함께 완성.

1866년

대왕대비의 수렴청정 끝내고 왕에게 환정(還政). 민치록(閔緇祿)의 딸이 왕비가 됨. 미국 상선 제네럴 셔먼호(號), 군민(軍民)에 의해 불탐. 척사윤음(斥邪綸音) 발표. 프랑스 함대, 양화진 (楊花津)에 내침. 해군대령 올리비에가 이끄는 프랑스군, 재차 내침, 강화도 점령, 양헌수(梁憲洙) 등이 대파.

1867년

서울 각 성문에서 통과세(通過稅) 징수. 신관호(申觀浩)가 수뢰포(水雷砲)를 만듦. 경복궁 의 근정전(勤政殿)·경회루(慶會樓) 완공.

1868년

당백전(當百錢)의 통용을 명령.

1869년

전라도 광양현(光陽縣)에서 민란 발생. 대원군의 명에 좇아 전국 8도(八道) 4도(四都)에 원 납전(願納錢) 납입을 독촉.

1870년

일본주재 독일공사 브란트, 일본 외무서기 하나부사[花房義質] 등 군함 헬타호(號)를 타고 부산에 입항, 통상을 요구, 거절당하자 귀국. 청국인 7,000여 명이 평안도 후창군(厚昌郡) 일대에 침입, 벌목을 시도하다 축출됨.

1871년

사액(賜額) 서원 47곳만 남기고 전국의 서원을 철폐.

1873년

선혜청(宣惠廳) 별창(別倉)에 화재. 최익현(崔益鉉), 대원군을 배척하고 시폐(時弊)를 논단 하는 상소로, 호초참판에 특임. 소사(疏辭)가 과격하다 하여 제주에 유배. 국왕, 친정 선포(대원군 실각).

1874년

강화도 연안 포대 축조 완성. 일본의 ‘정한설(征韓說)’로 각 군영(軍營)에 엄중경계령 내림. 병조판서 민승호(閔升鎬)의 침실 화약 폭발로 일가족 폭사. 달레(프랑스 신부)의 저서 최초 의 《한국교회사》 발간.

1875년

울산에서 민란 일어남(29일 진압). 왕이 경복궁으로 옮기고, 양주(楊州)에서 은거하던 대원 군 운현궁으로 환거. 일본 군함 운요호를 포격, 퇴각.

1876년

강화도 조약

1877년

제생의원(濟生醫院), 종두(種痘) 실시. 천주교 조선교구 주교 리델(프랑스인) 및 두새·로 베르 신부 등 체포.

1878년

청의 요청으로 리델 등 프랑스 신부를 베이징으로 귀환 조처. 일본 대리공사 하나부사[花房義質]가 부산해관의 철폐를 요구하는 무력시위 감행.

1879년

강수관(講修官) 홍우창(洪祐昌), 일본 대리공사 하나부사와 원산개항예약 의정서(議定書)에 조인.

1880년 .

김홍집(金弘集)을 일본수신사(日本修信使)에 임명. 원산에 일본 영사관 개관. 하나부사, 일 본 국왕의 친서(親書) 고종에게 전달. 삼군부(三軍府) 폐지하고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 치. 《동경대전(東經大典)》 등 출간. 지석영, 종두(種痘) 실시

1881년

박정양(朴定陽) 등 10여 명을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에 임명. 별기군(別技軍)을 두고 신식 군사훈련을 실시.

1882년

조미(朝美)수호조규·조영(朝英)수호조규 조인. 원산·부산·인천 개항. 5월, 조독(朝獨)수 호통상조약 조인. 군인들, 급료 체불과 급여양곡의 변질·정량부족 등에 격분, 난동(壬午軍亂). 대 원군, 원군으로 들어온 청군에 의해 납치, 청국으로 호송. 7월, 제물포조약 및 수호조규속약(修好條規續約) 체결. 박영효(朴泳孝)를 일본특사 겸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선중에서 태극기를 고안).

1883년

태극기를 국기로 정함. 당오전(當五錢)을 주조. 초대 미국공사로 푸트 착임, 수호조규(修好條規)를 비준·교환. 기기국(機器局)을 새로 설치. 최초로 영어교육 실시. 조영(朝英)수호통상 조 약, 조독(朝獨)수호통상조약 조인.

1884년

부산∼나가사키[長崎] 간 해저전선 개통. 우정총국(郵政總局) 개설. 이탈리아 및 러시아와 수호조규에 조인. 개화당 일파, 수구당 민씨 일파를 죽이고 새 정부를 조직(甲申政變). 5개조항으 로 된 한성조약 체결.

1885년

광혜원(廣惠院)을 설립, 미국인 의사 알렌 진료 실시. 영국함대 거문도를 불법점령.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 등 내한. 최초의 개신교회(소래교회) 창립. 배재학당(培材學堂) 설립. 대원군 귀 국. 《한성주보》 발간.

1886년

이헌영을 초대 주일공사에 임명. 서대문 밖에 수력화약공장(水力火藥工場) 건설. 스크랜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 설립(梨花學堂). 한불수호조규(韓佛修好條規) 조인. 언더우드, 학당 개설(儆新學校).

1887년

거문도 점거했던 영국 함대 철수(1885∼). 광무국(鑛務局) 설치. 최초의 감리교회 정동교회 (貞洞敎會) 창립. 김홍집(金弘集)을 좌의정 겸 총리내무부사(總理內務府使)에 임명. 새문안교회 창 립. 상공회의소 개설.

1888년

이화학당에서 최초로 주일학교(主日學校) 시작. 군제 개편, 삼남지방에 큰 흉년.

1889년

함북 길주(吉州)와 강원 정선군(旌善郡) 등지에서 민란 발생. 유길준(兪吉濬)의 《서유견문 록(西遊見聞錄)》 완성. 언더우드, 조선야소교서회(朝鮮耶蘇敎書會:현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부산 에 최초의 기선회사 설립.

1890년

부산·인천의 25객주(客主)를 철폐. 침례교회 선교를 시작. 커피·홍차 등이 소개되고 서 양의 배·사과·복숭아 등이 원산(元山)·길주(吉州)·대구(大邱) 등지에서 재배 시작.

1891년

제주민란 발생.

1892년

일본 어선, 제주 성산포(城山浦)에 상륙, 민간인을 살해하고 부녀자 폭행. 정부, 김옥균(金玉均) 암살계획을 세워 이일식(李逸植) 등을 일본에 파견. 현대식 화폐 주조.

1893년

동학교도 2만여 명, 충청도 보은군(報恩郡) 장내(帳內)에 모여 ‘척왜척양(斥倭斥洋)’ ‘창의(倡儀)’의 기치 아래 농성시위 계속. 지석영(池錫永), 교동(校洞)에 우두보영당(牛痘保謁堂) 을 설립. 중림동(中林洞) 약현성당(藥峴聖堂) 준공. 전봉준(全琫準) 등 학정 시정을 진정. 최초로 전화기 들여옴. 최초의 시계포, 구리개(을지로 入口)에 등장.

1894년

김옥균, 상하이[上海]에서 홍종우(洪鍾宇)에게 암살당함. 갑오경장(甲午更張)의 시작. 과거 제도 폐지. 15일, 김홍집내각 성립. 경북 안동(安東)에서 서상철(徐相轍) 의병 봉기(최초의 反日의 병운동). 동학교주 최시형(崔時亨), 무장봉기 선포. ‘홍범십사조(洪範十四條)’와 ‘독립선고문’ 을 종묘에 고함.

1895년

동학운동 주모자 전봉준 등 사형. 을미개혁(乙未改革) 단행, 재판소(법원) 구성법 등 34건 의 개혁안 의결. 군제(軍制)개혁도 단행, 훈련대 등 설치. 일본공사 미우라[三浦梧樓] 부임. 소학교 령(小學校令) 공포. 8월, 명성황후(明成皇后:閔妃)를 시해한 을미사변(乙未事變) 발생. 제3차 김홍 집내각 성립.

1896년

연호 건양(建陽)·태양력 사용(음력 1895.11.17). 이범진(李範晋)·이완용(李完用) 등 고종 및 왕세자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俄館播遷). 서재필, 《독립신문》 창간.

1897년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침. 국호(國號)를 ‘대한제국(大韓帝國)’, 왕의 호칭을 ‘황제’로 정함.

1898년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 설립. 2월 9일, 독립협회, 종로 네거리에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 개최. 22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죽음(5월 국장). 동학교주 최시형(崔時亨) 처형. 농상공 부(農商工部)에 철도사(鐵道司) 설치. 《제국신문(帝國新聞)》 순한글 신문으로 창간. 《황성신문 (皇城新聞)》(일간) 발행. 서울 종현(鐘峴)에 천주교회당 건립.

1899년

정선(旌善)·제주 등지에서 민란 발생. 광제원(廣濟院) 개설. 서울에서 전차 운행 시작. 대한국 국제의정(國制議定)을 반포. 경인선(京仁線:인천~노량진간) 완성(33.2km). 《독립신문》 폐 간. 관립경성의학교부속병원(현 서울대 부속병원) 설립.

1900년

만국우편연맹 가입. 의사·약제사·약품순시 규칙 등 공포. 한성전기회사(한·미인 공동경 영)가 최초로 종로에 가로등 3개 가설. 한강철교 준공, 경인선철도 완전 개통. 태극기 규정발표(흰 바탕에 長2자, 廣1자 8치, 태극은 지름 7치에 청·홍색).

1901년

신식 화폐조례(貨幣條例) 공포, 금본위제도(金本位制度) 실시. 7월, 최초의 안남 미 수입. 9월 17일, 흥선대원군을 왕으로 추봉. 10월 9일, 활빈당원 하원홍(河元泓) 등 참형. 혜민 원(惠民院) 설치.

1902년

갑산(甲山) 동광(銅鑛)의 갱도(坑道) 무너져 광부 600여 명 참사. 5월, 일본제일 은행 부산지점, 1원권을 발행, 한국에서 강제유통시킴. 6월 16일, 이상재(李商在) 등 개혁당 사건 과 관련, 구속. 황제등극 40주년 칭경식(稱慶式)을 거행. 8월, 국가(國歌)를 처음 제정. 제1차 하와 이 이민단 100여 명 출발.

1903년

개성∼평양간 전화 개통. 6월 14일, 주한 외국공사들, 러시아 공사관에서 비밀회담. 장지연 (張志淵)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 등 편찬.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조인. 25일, 의주(義州)를 개방. 3월 17일, 이토 히로부 미[伊藤博文], 특파대사로 내한. 8월 18일, 송병준(宋秉畯) 등, 유신회(維新會) 조직. 20일에 일진회 (一進會)로 개칭. 22일, 제1차 한일협약(韓一協約) 체결. 11월 16일, 제중원(濟衆院:세브란스병원)낙 성식. 26일, 원직(元稷)˙나유석(羅裕錫), 보부상을 규합, 진명회(進明會) 조직(12월 共進會와 통 합). 12월 미국인 천일외교관 스티븐스, 외교고문에 임명. 21일, 대한적십자사발족, 세계적십자사에 가맹.

1904년

일본 독도(獨島)를 강점, ‘다케시마[竹島]’로 명명. 3월 25일, 황제, 러시아 정 부에 밀서. 이용익(李容翊), 보성학교(普成學校) 설립(고려대학). 11월 9일, 일본특파대사 이토 히 로부미[伊藤博文] 내한. 17일, 박제순과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 제2차 한일협상조약(乙巳條約) 조인. 12월 1일, 손병희(孫秉熙), 동학(東學)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 21일, 일본, 한국 통감부(統監府) 및 이사청(理事廳)관제 공포 시행. 초대 통감에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

1905년

초대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입국. 4월 21일, 엄비(嚴妃), 진명(進明)여학교 설립. 6 월 4일, 최익현(崔益鉉)·신돌석(申乭石) 등 의병 일으킴. 7월 2일, 일본 경찰, 경운궁(덕수궁)의 경비권을 강탈. 8월 18일, 최익현˙임병찬 등 9명 대마도에 유배. 31일, 《한성신보》 폐간. 9월 1 일, 통감부의 기관지로 《경성일보(京城日報)》 창간. 10월 1일, 지방행정구역 개편(13도 11부 333 군으로 개편). 18일, 한국 최초의 기념우표 발행. 19일, 가톨릭교에 주간지로 《경향신문》 창간. 12월 1일, 최초의 소년잡지 《소년한반도》 창간. 최초의 전국적 호구조사 실시.

1907년

서상돈(徐相敦) 등,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5월 22일, 이완용(李完用) 내각 성립, 23일 한글판 《대한매일신보》 창간. 6월 15일, ‘헤이그밀사사건’(李儁 분사). 7월 16일, 총리대신 이완용, 황제에게 양위를 강요. 24일,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丁未七條約) 및 비밀부 각 서 조인. 31일 군대해산 조칙(詔勅) 발표. 8월 2일, 연호를 융희(隆熙)로 함. 12월 27일, 경운궁에 서 순종, 황제 즉위식. 9월 1일, 서울에서 최초의 박람회 개최(~11.15.).

1908년

청진항(淸津港) 개항. 4월 1일, 관립한성고등여학교(현 京畿女高) 설립. 부산역 개 설. 23일 전명운(田明雲)˙장인환(張仁煥),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티븐스 사살. 안창호(安昌浩) 등 대성학교(大成學校) 설립. 12월 1일, 최남선(崔南善), 최초의 월간종합지 《소년(少年)》 창간. 최초의 신극 이인직(李仁稙)의 《은세계》, 원각사에서 공연. 12월 3일, YMCA회관 개관식 거행.

1909년

나철(羅喆), 대종교(大倧敎) 창시. 2월 1일, 미주(美洲) 한국인단체들, 통합해 국민회로 발족, 6월 2일, 《대한민보(大韓民報)》 창간. 10월 24일, 안중근(安重根),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 미를 사살.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창립.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高羲東), 화가로 데뷔.

1910년

안중근, 여순(旅順)감옥에서 사형당함. 8월 16일, 총리대신 이완용, 조중응(趙重應)과 통감 데라우치[寺內正毅]를 방문 합방에 관한 각서 교부. 22일, 이완용·데라우치, 한일합병 조약에 조인. 10월 1일, 총독에 데라우치 통감이 임명. 12월 27일, 데라우치 총독 암살계획을 추진 중이던 안명근(安明根) 체포. 105인 사건으로 확대되어 12년에 윤치호(尹致昊) 등 신민회원 120여 명 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