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jun.org
'''고조선'''은
한국의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국가이다. 크게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으로 나누어진다.
삼국유사 기이편에 따르면
환인의 서자
환웅천왕이 있었는데 인간 세상을 다스리길 원해,
천부인 세 개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려와 도읍을 정해
신시라 했다. 이 태백산은 삼국유사는
묘향산이라 하고
규원사화는
백두산이라 한다. 이후 환웅천왕이
웅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를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나, 규원사화는 "왕검"이 "임검(壬儉) "의 오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군왕검은
기원전 2333년 평양에 도읍하여
단군조선의 시조가 되었고, 이후 규원사화에 따르면 47대의
단군들이 1195년에 걸쳐 다스렸다. 삼국유사는 단군왕검이 도읍한 지 1500년이 지난 뒤에 중국에서
기자가 동래하여 왕이 되고, 단군은 신선이 되었다고 하니 이것이
기자조선의 시작이다.
태원 선우씨의 족보인 <태원선우씨세보(太原鮮于氏世譜)>에 따르면 선우씨는 기자조선의 48대 왕위와
마한 9대 왕위를 지냈다고 한다.
환단고기를 비롯한 일부 책은 기자조선의 존재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데, 단군조선이 2096년간 계속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규원사화의 1195년보다 901년이나 차이가 나, 고의로 기자조선을 묻어버린 것으로 판단된다.
기원전 3세기 말에
연나라 사람
위만이 연왕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들어가자 무리 1천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주, 조선에 자리잡았다.
진번과 조선인들,
연나라와
제나라의 망명자들을 모아 세력을 불린 위만은
기원전 194년 조선의 왕이 되어 "왕검"을 칭하니
위만조선이다. 위만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손자
우거왕(右渠王)에게까지 왕위가 돌아갔다. 위만에게 쫓겨난 기자조선의
준왕은 남쪽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우고
마한이라 했다. 우거왕은
한나라와
진국 사이를 가로막고 왕래를 방해했다. 이에 한나라 천자가 사신
섭하를 보내
요동의 동부도위를 삼았는데, 조선이 이를 쳐 죽였다. 천자가 노해 육군 5만과 수군 7천을 내어 조선을 치니, 우거왕은 왕검성에 틀어박혀 수비에 열중했다. 왕검성에는 수비병력이 얼마 없어, 한나라 군사를 막아내는데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를 안 한나라 천자가 위산(胃散)을 시켜 항복을 권유, 우거왕이 이를 받아들였다. 위산은 항복 조건으로 태자를 볼모로 하고 군사 1만의 호위를 붙이는 것에 동의했으나 한나라 천자가 군사 1만의 호위는 너무 위험하다고 하여 태자 혼자만 오게끔 명령했다. 조선 태자는 이에 반발하여 군사를 이끌고 왕검성으로 돌아가 버렸고, 이를 안 천자는 위산의 목을 베었다. 전쟁은 재개되었고, 왕검성의 공성이 몇 달간 계속되었다. 이후 왕검성이 무너지고,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이 망하였다. 한나라는 이후 조선의 땅에
한사군을 설치했으나, 한사군의 실존 여부를 부정하는 학자들도 있다.